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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사랑확증,롬5;8,
2006-06-27 10:47:53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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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사랑확증 로마서 5:8 (신약 245쪽)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팔을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음식도 간신히 삼키는 정도였습니다. 소년은 매일 할아버지 방으로 식사를 챙겨 드려야 했고 음식을 먹여 드려야 했습니다. 소년은 그 일을 성실히 했지만 별로 즐거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 일이 싫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에게 외쳤습니다. "이제부터는 엄마가 할아버지를 먹여 드리세요" 어머니는 참을성 있게 듣고 있다가 일을 멈추고 소년에게 의자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너도 이제 청년이 되었으니 ?할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부 알아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휠체어에 앉아 계셨던 것은 아니란다 할아버지는 아주 건강한 분이었지 그런데 네가 아이였을 때 사고가 생겼단다" 소년은 고개를 의자에 파 묻은 채 듣고만 있었고 어머니는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집에 불이 났단다. 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1층에 있었고 너는 2층에 있었단다. 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일을 하면서 네가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고 나는 네가 네 아버지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혼자서 급히 집을 빠져 나왔단다. 그 때 할아버지는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직감하셨는지 황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너를 찾아 너를 젖은 담요에 감싸 안고 불꽃 속에서 미친 듯이 뛰어 나왔단다. 할아버지는 조금도 다치지 않은 너를 나에게 건네주시고 곧 쓰러졌단다. 할아버지는 심한 화상 뿐 아니라 연기에 질식한 상태에서 응급실로 가셨단다. 할아버지가 지금처럼 되신 이유는 바로 그 날 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불 속으로 뛰어 드셨기 때문이란다." 소년은 처음 아는 일이었습니다. 소년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식사를 챙겨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인생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것은 삶의 태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고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려는 시도와 노력을 수없이 합니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에서 보면 소년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태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내면세계의 상처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 해결책은 자신이 얼마나 큰 용서를 받은 존재이고 얼마나 사랑을 받는 존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1. 인간은 죄를 범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image)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창1:27).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좁게는 의와 성결의 성품을 가졌다는 것이고 넓게는 이성적 도덕적 불멸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이라는 동산(낙원)에 두고 그들로 하여금 행복을 누리며 살게 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창2:16-17).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계약,약속)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히 하나님이 되어 주고 행복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질서 속에서 살며 그의 명령을 따라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언약의 매개체(도장)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습니다. 아담이 그것을 따먹지 않으면 언약의 효력이 지속되지만 그것을 따먹을 경우 언약이 파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사단이 사주한 뱀에게 미혹당한 하와의 권유에 의해 그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창3:1-24). '죄인'이라는 법정적 선고가 내려졌고 인간성이 전적으로 부패해졌습니다. 죽음이 찾아왔고 그 증후군들인 각종 수고와 번민과 고통과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창3:19).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였습니다. 아담 인류의 시조 아담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맺었습니다. 대표원리에 의해 그가 지은 죄와 그 결과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아담으로부터 전가된 원죄(原罪)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정죄(죄책)와 유전죄(오염)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부패한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윤리적인 선을 행하므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죄 문제를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는 죽음과 질병과 번민 등 각종 고통의 문제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 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서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9:27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인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절망에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 값으로 죽어야 하고 의를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롬6:23). 그러나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죄와 그 결과로 오는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질적 속성이 사랑이시기에 자기의 형상대로 지은 우리를 그냥 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된 위치에 있던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맡으시고 그 죄값으로 죽으셨습니다 (사53:5, 요1:29, 고전15:3). 그것은 죄값은 사망이므로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롬6:23, 레17:11, 히9:22). 또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온전히 행하므로 그 의로 말미암아 부활하셨습니다 (행2:24, 3:15, 고전15:4, 롬4:23, 5:23, 10:4).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의를 행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로마서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죄에서 구원받고 죽음과 형벌에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고, 요한복음5:24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고 사도행전16:31에는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고 했고 로마서10:9-10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했고 그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사실도 몰랐고 아니 알았다 하더라도 그를 믿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성령님을 보내어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도록 역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시인하게 되었고 고백하게 되었고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해 주시고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의무와 책임이 없습니다. 인간이 언약을 깨트렸고 인간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지 않았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지 않고 믿게 하지 않고 구원받게 하지 않았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고 구원받게 한 것은 그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결정적으로 말해 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생활 가운데 지은 죄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구원받는 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여 구원하실 뿐 아니라 거룩하게 하여 선한 목적을 이루려는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로마서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가지신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날마다 본죄(자범죄와 요구죄)를 짓더라도 말입니다.
누가복음15:11-24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 간섭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자신도 자기 마음대로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의 몫을 미리 달라고 해서 아버지가 준 재산을 가지고 멀리 이방도시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창기들과 함께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재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곳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지자 다른 사람의 집에서 돼지 치는 일을 하면서 연명했습니다.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콩깍지처럼 생긴 식물의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것 조차도 주는 자가 없어서 배불리 얻어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생각하기를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돌아가 잘못을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다가 멀리서 아들이 비틀거리며 오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측은히 여겨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이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들을 시켜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반지를 끼우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엽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아들입니다. 당시 관습으로 볼 때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합니다. 재산을 상속받은 아들은 부모가 죽을 때까지 봉양해야 합니다. 이 아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쾌락을 누리다가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직업인 돼지 기르는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그를 증오했을 것입니다. 그의 다시 내어 쫓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잘못을 생각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의 잘못을 생각하기 보다 그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돌아온 것 자체로 기뻐하고 여전히 아들로 대하고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채워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아들된 우리에게 이런 심정을 가지고 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되는 모든 부요한 행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육욕을 따라 삽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잃고 곤고한 삶을 삽니다. 우리가 고집하고 선택한 것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릴 의무가 없고 우리를 다시 받아들일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니 내버려 주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책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아픔을 생각하시고 우리를 위로하며 우리에게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낸 사랑과 용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아버지께 죄를 범하였사오니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용서받기 위해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경험하고 확신하기 위해 고백해야 합니다.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목사인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에게 알렉스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찰스 스탠리 목사는 친구가 사업이 어려워 지자 그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 돈은 상당히 큰 액수였고 찰스 스탠리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돈을 사업을 일으키는데 사용하지 않고 그 동안 빌린 돈을 청산하는데 다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소식이 끊겼습니다. 교회에도 나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업이 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찰스 스탠리는 친구에 대해 실망스러워 했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괴로워 했습니다. 그렇게 씨름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가 돈을 돌려 주지 않더라도 용서하고 친구로서 여전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그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찰스 스탠리는 그에게 이미 용서를 했으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계속해서 친구로 지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찰스 스탠리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큰 돈을 잘못 사용해버린 것에 대해 어느 누구의 용서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찰스 스탠리를 비방했고 고소까지 들먹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용과 교회와의 관계와 하나님께 쓰임받을 기회까지 파괴해 버렸습니다. 죄책감이 또 다른 죄를 추가시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용서한 친구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고통의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요한일서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이 불편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팔을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음식도 간신히 삼키는 정도였습니다. 소년은 매일 할아버지 방으로 식사를 챙겨 드려야 했고 음식을 먹여 드려야 했습니다. 소년은 그 일을 성실히 했지만 별로 즐거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그 일이 싫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에게 외쳤습니다. "이제부터는 엄마가 할아버지를 먹여 드리세요" 어머니는 참을성 있게 듣고 있다가 일을 멈추고 소년에게 의자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너도 이제 청년이 되었으니 ?할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을 전부 알아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휠체어에 앉아 계셨던 것은 아니란다 할아버지는 아주 건강한 분이었지 그런데 네가 아이였을 때 사고가 생겼단다" 소년은 고개를 의자에 파 묻은 채 듣고만 있었고 어머니는 계속 이야기 했습니다. "집에 불이 났단다. 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1층에 있었고 너는 2층에 있었단다. 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일을 하면서 네가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고 나는 네가 네 아버지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우리는 각기 혼자서 급히 집을 빠져 나왔단다. 그 때 할아버지는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직감하셨는지 황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너를 찾아 너를 젖은 담요에 감싸 안고 불꽃 속에서 미친 듯이 뛰어 나왔단다. 할아버지는 조금도 다치지 않은 너를 나에게 건네주시고 곧 쓰러졌단다. 할아버지는 심한 화상 뿐 아니라 연기에 질식한 상태에서 응급실로 가셨단다. 할아버지가 지금처럼 되신 이유는 바로 그 날 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불 속으로 뛰어 드셨기 때문이란다." 소년은 처음 아는 일이었습니다. 소년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식사를 챙겨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인생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는 것은 삶의 태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고 부정적인 태도를 바꾸려는 시도와 노력을 수없이 합니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에서 보면 소년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태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내면세계의 상처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알고 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 해결책은 자신이 얼마나 큰 용서를 받은 존재이고 얼마나 사랑을 받는 존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1. 인간은 죄를 범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image)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창1:27).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좁게는 의와 성결의 성품을 가졌다는 것이고 넓게는 이성적 도덕적 불멸적 특성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이라는 동산(낙원)에 두고 그들로 하여금 행복을 누리며 살게 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누렸습니다 (창2:16-17).
하나님은 아담과 언약(계약,약속)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히 하나님이 되어 주고 행복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질서 속에서 살며 그의 명령을 따라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언약의 매개체(도장)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습니다. 아담이 그것을 따먹지 않으면 언약의 효력이 지속되지만 그것을 따먹을 경우 언약이 파기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사단이 사주한 뱀에게 미혹당한 하와의 권유에 의해 그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렸습니다 (창3:1-24). '죄인'이라는 법정적 선고가 내려졌고 인간성이 전적으로 부패해졌습니다. 죽음이 찾아왔고 그 증후군들인 각종 수고와 번민과 고통과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창3:19).
아담은 인류의 대표자였습니다. 아담 인류의 시조 아담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맺었습니다. 대표원리에 의해 그가 지은 죄와 그 결과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아담으로부터 전가된 원죄(原罪)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정죄(죄책)와 유전죄(오염)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부패한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윤리적인 선을 행하므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죄 문제를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는 죽음과 질병과 번민 등 각종 고통의 문제도 극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 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서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9:27에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인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인간은 절망에 있었습니다. 스스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 값으로 죽어야 하고 의를 온전히 행해야 합니다 (롬6:23). 그러나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룰 수 없었습니다. 죄와 그 결과로 오는 죽음과 지옥 형벌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질적 속성이 사랑이시기에 자기의 형상대로 지은 우리를 그냥 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동등된 위치에 있던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맡으시고 그 죄값으로 죽으셨습니다 (사53:5, 요1:29, 고전15:3). 그것은 죄값은 사망이므로 죄값을 치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롬6:23, 레17:11, 히9:22). 또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온전히 행하므로 그 의로 말미암아 부활하셨습니다 (행2:24, 3:15, 고전15:4, 롬4:23, 5:23, 10:4).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 대신 의를 행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로마서3:23-24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죄에서 구원받고 죽음과 형벌에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고, 요한복음5:24에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고 사도행전16:31에는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고 했고 로마서10:9-10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했고 그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사실도 몰랐고 아니 알았다 하더라도 그를 믿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성령님을 보내어 예수가 구주로 믿어지도록 역사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시인하게 되었고 고백하게 되었고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해 주시고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의무와 책임이 없습니다. 인간이 언약을 깨트렸고 인간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지 않았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지 않고 믿게 하지 않고 구원받게 하지 않았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고 구원받게 한 것은 그가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용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결정적으로 말해 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생활 가운데 지은 죄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는 구원받는 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여 구원하실 뿐 아니라 거룩하게 하여 선한 목적을 이루려는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로마서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가지신 영원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날마다 본죄(자범죄와 요구죄)를 짓더라도 말입니다.
누가복음15:11-24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 간섭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자신도 자기 마음대로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의 몫을 미리 달라고 해서 아버지가 준 재산을 가지고 멀리 이방도시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창기들과 함께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재산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곳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지자 다른 사람의 집에서 돼지 치는 일을 하면서 연명했습니다.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콩깍지처럼 생긴 식물의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지만 그것 조차도 주는 자가 없어서 배불리 얻어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은 생각하기를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돌아가 잘못을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돌아갑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다가 멀리서 아들이 비틀거리며 오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 측은히 여겨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이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들을 시켜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반지를 끼우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엽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아들입니다. 당시 관습으로 볼 때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합니다. 재산을 상속받은 아들은 부모가 죽을 때까지 봉양해야 합니다. 이 아들은 자기만 생각하고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쾌락을 누리다가 다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직업인 돼지 기르는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그를 증오했을 것입니다. 그의 다시 내어 쫓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잘못을 생각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의 잘못을 생각하기 보다 그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돌아온 것 자체로 기뻐하고 여전히 아들로 대하고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채워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아들된 우리에게 이런 심정을 가지고 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되는 모든 부요한 행복을 누리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육욕을 따라 삽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잃고 곤고한 삶을 삽니다. 우리가 고집하고 선택한 것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릴 의무가 없고 우리를 다시 받아들일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고통을 받는 것이니 내버려 주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책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아픔을 생각하시고 우리를 위로하며 우리에게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낸 사랑과 용서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내가 아버지께 죄를 범하였사오니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용서받기 위해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경험하고 확신하기 위해 고백해야 합니다.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목사인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에게 알렉스라는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찰스 스탠리 목사는 친구가 사업이 어려워 지자 그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 돈은 상당히 큰 액수였고 찰스 스탠리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돈을 사업을 일으키는데 사용하지 않고 그 동안 빌린 돈을 청산하는데 다 써버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소식이 끊겼습니다. 교회에도 나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업이 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찰스 스탠리는 친구에 대해 실망스러워 했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괴로워 했습니다. 그렇게 씨름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가 돈을 돌려 주지 않더라도 용서하고 친구로서 여전히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그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찰스 스탠리는 그에게 이미 용서를 했으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계속해서 친구로 지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찰스 스탠리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큰 돈을 잘못 사용해버린 것에 대해 어느 누구의 용서도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찰스 스탠리를 비방했고 고소까지 들먹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용과 교회와의 관계와 하나님께 쓰임받을 기회까지 파괴해 버렸습니다. 죄책감이 또 다른 죄를 추가시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용서한 친구의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고통의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요한일서1:9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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