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정보
1.애굽왕의 계보
(1).메네스(Menes)
B.C3200년경부터 3000년에 이르는 불과 수세기 사이에 나일강연안에 흩어져 생활하는 부족민을 통합하여 정부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를 성립한 파라오로서 상이집트 부족의 지도자로 전설에는 메네스로 되어 있으나아마도 이집트 초대왕 나르메르(Narmer)와 동일인물인 것 이다. 근느 세력을 북으로 뻗쳐 국토를 통합하고 30대에 이르는 첫 왕조를 수립한 것이다. 메네스는 델타의 요충지로부터 남으로 약32km,상.하이집트가 접하는 지점 가까이에 멤피스마을 건설하고 그것을 왕국의 수도로 삼았다. 그 후 멤피스는 고대 이집트 제일의 도시가 되었다
(2).죠세르(Djoser)
멤피스의 묘지 삭카라에 있는 최초에 만들어진 거대한 분묘로서 계단형 피라미드인 이것은 제3왕조의 최초의 왕 죠세르를 위한 것이다.
(3).쿠프(Khufu)외
쿠프( khufu), 카프레(Khafre),멘카우레(Menkaure)는 기제에 있는 세 개의 피라미드의 파라오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는 케오푸스,케플렌,미케리누스라는 이름으로 기술되었다)
(4).페피2세(Pepi II)
고왕국시대 최후의 위대한 왕. 90년에 걸쳐 재위함.
(5).네브헤페트레 멘투호테프(Nebhepetre Mentuhotep)
제1중간기후 이집트의 재통일이라는 위대한 위업을 달성한 11왕조의 파라오.
(6).아흐모세1세(Ahmos I)
신왕국시대에 최초로 나타난 위대한 파라오. 그는 이집트를 공격하고 지배한 힉소스를 추방하고 고왕국시대의 영토를 회복했다
(7).아멘호텝프1세(Amenhotep I)
아흐모세1세의 아들로 영토를 남으로 넓혀 그 후 150년에 걸친 번영시대의 첫걸음을 시작하였다.
(8).투트모세1세(Thutmes I)
아멘호텝프의 뒤를 이은 투트메스1세는 국경을 더욱 넓혀 남쪽은 제4폭포 앞까지, 북동은 팔레스티나, 시리아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차지함
(9).하트셉수트여왕(Hatshepsut)
투트메스1세의 딸이며, 또한 이복오빠인 투트메스2세의 왕비이다.투트메스2세가 짧은 치세의 끝에 사망하자 하트셉수트는 나이어린 투트메스3세의 섭정이되어 정권을 장악했다. 투트메스3세는 투트메스2세의 하렘의 소실로부터 얻은 아들로 정식으로는 이 소년이 파라오였다. 하트셉수트는 처음에는 어린왕의 이름으로 통치했으나 얼마 안가서 파라오로 자칭하며 정치를 했다. 이집트왕가에 많은 여인들중 하트셉수트는 왕권과 함께 신권마저 차지하고 상.하이집트의 주권을 의미하는 이중의 관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여왕의 조상에는 남성용 왕복을 입은 모습과 파라오의 전통인 가발수염을 단 것까지 남아있다. 여왕의 등장으로 군사적인 팽창은 약 20여년간 중단되었고, 전쟁을 수습하여 이집트에 평화를 가져왔다. 또한 기념물을 여러개 만들기도 하였다. 이 위대한 여왕을 도운 유능한 인물이 있었는데 센무트(Senmut)라는 사나이로 어떤 기록에 의하면80개의 관직을 겸하고 있었으며 여왕이 가장 신뢰하는 보좌관이었다고 한다. 센무트는 공공사업 담당대신이면서 여왕을 장사지낼 장제전의 건설책임자였다. 여왕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 덕을 보려고 센무트는 여왕의 장제전에 자기의 초상을 몰래 새기도록 지시했다. 이 일이 여왕에 발각되어 그의무덤을 부수고 관을 박살냈으며 몰래 새긴 그의 초상을 찾아내어 깨끗이 깎아 버리고 말았다. 하트셉수트여왕이 위대한 파라오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이집트의 나폴레옹"이라 불리우는 투트메스3세를 오랫동안 조종하고 군림했다는 것으로 알수있다.
(10).투트메스3세(Thutmes III)
그는 가가스로 필요한 지원을 얻어 여왕을 물리칠 수 있었고, 그 후 여왕이 센무트의 초상을 삭제했듯이 여왕이 만든 기념물에 새겨진 하트셉수트의 이름을 깎아 버렸다. 하지만 깎아 버려도 그 흔적은 지금까지남아있고,전해오고 있다. 정권을 잡은 투트메스3세는 다시 외국정복을 기도했고, 투트메스1세가 손을 댄팔레스티나,시리아에 대한 정복과 병합을 확고히 하고자 15회 이상이나 원정군을 지휘했고, 그곳을 평정했다. 투트메스3세는 전쟁시 용의주도한 사전준비와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천재였다고 한다.
(11).아멘호텝프 3세(Amenhotep III)
투트메스3세의 증손인 아멘호텝프3세의 시대는 18왕조의 전성기에 해당된다. 이집트는 평화로왔고, 교역은 번창했으며, 파라오는 궁전과 거대한 조상, 자신을 매장하기위한 장제전, 그리고 각도시에서의 신전 건립등 방대한 건설계획에 힘을 쏟았다.
(12).아멘호텝프 4세(Amenhotep IV)
이때부터 18왕조는 쇠퇴의 빛을 보이며 국위는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아멘호텝프4세는 허약한 사나이로얼굴이 길고, 어깨는 축 늘어졌으며,궁둥이가 크고 다리는 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수세기동안 계속되어온 다신교를 부정하고, 신 아몬에대한 전통적인 신앙을 태양으로 대표되는 유일한 보편적인 신이며 모든 생명의 원천인 신 아톤(Aton)으로 신앙을 바꾸려 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도 "아몬이 넘쳐있는 신성있는 테베의 지도자"의 뜻인 아멘호텝프 대신 "아톤을 섬기는자"를 뜻하는 아켄아톤(IkhnAton)으로 바꾸었다. 그는 모든 신전이나 분묘에서 아몬의 상과 이름을 지우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아켄아톤은 사람들이 직접 신에 접급하지 못하게 하고, 아톤을 숭배하는 것은 그와 그의 일족에게 한하고 일반인은 신왕인 자신을 숭배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실패하고, 그가 죽고나서 이집트는 개혁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네페르티티(Nefertiti) :특이하게도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아켄아톤의 아내는 끊임없이 대중을 매혹시켰다. 그러나 현재 그녀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에도 왕비로서의 역할이외에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그녀의 선조에 대해서도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13).람세스 1세(Ramses I)
제 19왕조를 연 최초의 왕으로 군대지휘관 출신이었다. 19-20왕조의 파라오들중엣서 11명의 파라오가 람세스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14).람세스2세(Ramses II)
람세스2세는 왕중의 왕다운 인물이었고, 67년 걸친 찬란한 통치를 했다. 그는 힛타이트인과 외교교섭을 시작하여 기록으로서 남은 역사상 첫조약에 서명을 했다. 그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 원정했고 남부를 습격했다. 그의 용감한 훈공과 개인적인 용기에 얽힌 이야기를 당시의 신전벽에 새겨져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카르나크에 있는 유명한 제례용 신전인 대다주실, 그 자신과 아몬신의 영광을 찬양하기위하여 테베의 나일 서안에 건립한 대장제전 라벳세움, 오시리스신에게 바친 아비도스의 대신전, 후에 약탈의 화를 입은 몇 개인가의 멤피스신전, 강을 마주보며 4개의 람세스거상이 늘어선 누비아의 아부심벨의 신전등이 있다.
(15).클레오파트라(Cleopatra)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의 그리스 시대 왕비들의 전통적인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 시대의 마지막 군주였던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의 이름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클레오파트라 여왕(기원전 51-30)은 이집트의 그리스시대(기원전 332-30) 마지막 통치자로서 로마 제국과의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속에서 파란만장한 정치생활을 이끌었다. 기원전 51년 그녀의 부친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클레오파트라의 정치적 후견인이 되었고, 그가 케사르에게 쫒겨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암살당한 뒤 정식으로 이집트 왕위에 올랐다. 케사르가 죽은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 관곌르 맺었고, 로마는 이에 대항하여 기원전 32년 이집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기원전 31년 벌어진 악티움(Actium) 해전에서 클레오파트라의 해군이 주축이 된 안토니우스 측은 경쟁세력인 옥타비우스에게 패했고 클레로파트라는 기우너전 30년 8월 10일 알렉산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와 함께 자결하였다.
2. 프톨레미 왕조( B.C. 323-30)
나이 스물에 왕위에 올라 천하를 호령하던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에 급사하자 그의 장군 가운데 한 명인 “프톨레마이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이집트에 프톨레미 왕조를 세우고 자신을 “프톨레미 1세”라고 칭하며 왕위에 오르는데 재색을 겸비한 요부 또는 간부라는 주위의 눈총에도 아랑곳 없이 오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 남동생 두 명 (프톨레마이우스 13세 와 14세)은 물론 로마의 씨져(Caesar)와도 결혼했던 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7세”도 바로 “프톨레마이우스 12세” 왕의 공주였다. 프톨레미왕조는 앗수르의 셀류크스 왕조와 이어지는 안티오커스왕조로 더불어 150년 동안 전쟁을 지르게 되었는데 이로 말미암아 국력은 극도로 쇠약하게 되었고 마침내 로마의 속주가 되고 말았다.
3. 애굽 사람들의 신(神)
애굽의 종교는 태양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하루에도 태양의 모습은 다양하게 느껴진다. 태양의 다양한 모습은 다양한 애굽의 종교를 낳았다. 애굽종교의 내용은 여러사회가 태양을 어떻게 보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졌다. 다음에 있는 신들은 태양종교에 관련되 중요한 신(神)들이다.
6-1 아몬(Amon)
애굽의 신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신이다. 아몬은 태양의 숨은면을 상징하는 신이다. 그는 숨어 있는 신이라고 불렀다. 그는 모든 신과 세상 만물을 창조한 어버이신이며 창조주이다.또 암소로 표현하기도 한다.
6-2 레(Re)
이신은 둘째로 가는 태양신이다. 그는 정점에 이른 정오의 태양의 신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흡을 주려고 사방의 바람을 만들었다는 창조신이기도 하다.
6-3 케프리(Khepri)
이 신은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한다. 풍뎅이 벌레로 나타난다.
6-4 아툼(Atum)
헬리오폴리스의 창조신이며 서쪽하늘에서 사라지는 태양을 상징한다. 황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케프리, 레, 아툼,은 태양종교의 삼위신이다.
6-5 아톤(Aton)
둥근 태양의 모습을 구체화 한 디스크(日輪)이다. 그 햇살은 사람의 피부에 닿아 양자의 접촉이 이룩된다.
6-6 프타(Ptah)
멤피스의 창조신이다. 황소로 변신 또는 표현된다.
6-7 아포피스(Apophis)
뱀으로 상징되는 신이다. 아포피스는 태양의 영원한 적수이다. 악의 화신이다.
6-8 오시리스(Osoris)
나일강의 신이다. 그는 죽음과 부활의 신이기도 하다. 오시리스는 애굽에 풍요한 안정을 베푼다. 태양이 없는 밤하늘에 뜬 달은 오시리스의 모습이기도 하다.
6-9 호루스(Horus)
오리시스의 아들이다. 그는 살아있는 바로와 동일시 된다. 새매는 호루스의 상징이다.
6-10 이외에
토드(Thoth)-지혜의 신인 원숭이. 토드의 아내는 헤카(Heka)- 개구리
세트(Set)- 악어이며 동쪽의 신 네집트(Nechebt)- 뱀이며 남쪽의 신
바스트(Bast) - 고양이이며 여자의 신.
애굽인들이 섬기던 나라들이 이러한 잡다한 것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들이 다 가짜요 참 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하여 열 번이나 되풀이 되는 재앙을 내리셨던 것이다.
이집트의 역사
지금부터 6,000년 전 이집트는 주민의 생업과 정치, 종교, 문화의 정서가 서로 다른 두 지역처럼 나일 삼각주의 하이집트와 상류지방인 상이집트로 나누어졌다. 상이집트는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이용할 만한 토지가 점차 줄어들고 생산성도 떨어져 가는 나일 강변의 좁고 긴 지역이었다. 하이집트는 오늘날 카이로 북부에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있는 인구가 밀집된 풍요로운 땅으로 다른 이민족들과의 교역과 교류가 육지와 바다를 통해서 활발이 이루어지던 지역이었다. 그후 1,000여 년에 걸쳐 끊임없이 적대하고 경쟁하던 상, 하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경 무렵 상이집트의 나르메르(혹은 메네스)라는 왕에 의해 최초로 통일되어 수도는 중간지점인 나일 델타 곡창지대가 시작되는 멤피스에 건설되었다.
나르메르의 통일은 이집트 민족의 통합과 이집트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통일 후, 이집트는 강력한 사회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이 시대를 제1왕조, 제2왕조라 하는데 이집트는 정부 조직과 행정 체계, 건축과 토목 기술, 예술 등 모든 면에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집트 인들의 문자 체계인 히에로글리프도 정비되었고, 1년을 365일로 하는 역법이 완성되었다. 기원전 약 2800년경의 제3왕조의 2대 군주 조세르는 이집트 왕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피라미드를 건설한 군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피라미드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제4왕조에서 나타난다. 제4왕조의 초대 왕은 그의 후계자가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대피라미드를 기자에 세우게 된다. 제4왕조는 고대 이집트 왕국이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으며, 사람인 동시에 신이기도 했던 파라오와 그의 왕권이 문자 그대로 절대적이었던 시기였다. 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의 아들 우세르카프가 세운 제5왕조에서는 태양신 숭배가 절정에 이른다. 오시리스 신을 대신하여 태양신 라가 최고신이 되었고, 군주들은 태양신의 아들임을 자처했으며, 태양신을 위한 신전이 건축되었다.
제5왕조 군주들이 피라미드 벽화에는 이집트 인들이 시리아, 누비아 등지에서 벌인 원정 사업이 그려져 있으며, 이러한 업적은 팔레르모 스톤(Palermo Stone) 같은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제5왕조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군주의 절대 권력은 제6왕조 때 완전히 약화되고, 이후 이집트인들은 폭력과 내전으로 점철되고, 비관과 혼란이 가득한 제7~10왕조의 제1중간기를 겪게 된다. 마네토의 제11왕조(기원전2133~1991년)와 제12왕조(기원전 1991~1785년)에 해당되는 중왕국시대는 테베의 왕자 멘투호텝 2세가 오랜 고난과 투쟁 끝에 이룩한 상, 하이집트의 재통일도 시작된다.
통일은 모든 계층이 이집트 인들에게 향상된 삶을 가져다 주었으며, 절대 다수의 이집트인들로부터 환영받았다. 멘투호텝 2세는 통일 후 바로 누비아, 리비아, 시리아, 시나이 원정에 나서 성공을 거두었다. 상이집트 총독으로서 이러한 원정 사업의 책임자였던 재상 아메네메트가 제12왕조를 연다. 이 왕조시대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집트 역사의 황금기라고 하는 세소스트리스 3세와 아메네메트 3세의 재위 기간은 평화와 안정의 시기였으며, 신인 동시에 인간이었던 파라오들이 인간 쪽에 더 가까워진 시기였다. 제12왕조 초기부터 번영하는 이집트는 외국인들, 주로 아시아인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으며, 통상 외교의 확대로 이집트에 외래 문화와 사상이 밀려 오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제12왕조 말부터 점차 국가의 통제권이 약화되고, 나라가 분열되면서 여러 대 전부터 이집트 땅에 들어와 정착한 아시아 쪽 외국인들이 제16왕조와 제17왕조 시기에는 이집트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들을 힉소스(이민족 통치자들)라고 부른다.
아시아 인들의 지배는 이집트에 새로운 문물이 유입되는 전기가 되었다. 새로운 악기와 음악 양식, 청동 세공술에서 도자기 제조, 베짜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품종의 곡물과 곡식이 도입된다. 전쟁에는 새로운 유형의 무기와 아울러 전차와 말이 등장하였다. 제13왕조 때부터 힉소스 지배가 끝날 때까지의 혼돈기를 제2중간기라 부른다. 제18왕조는 이민족 힉소스의 지배를 벗어 던지기 위해 여러 대에 걸쳐 투쟁하던 테베의 왕가 출신 아흐모세가 열었다. 그는 힉소스의 세력을 델타 지역에서 소탕하고, 상하 이집트를 재통일하였으며 이집트의 옛 영토를 회복했다.
그후 투트모스 3세는 스스로 이끈 여러 차례의 원정전에서 승리하면서 이집트의 옛땅을 수복하고 아시아 지역을 편입하여 '나일 제4폭포'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러한 이집트의 정치 세력은 아멘호텝 3세 시대에 절정에 달했다. 그는 황금의 호루스, 진리의 통치자, 상하이집트의 왕, 라의 아들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아멘호텝 4세는 이집트의 모든 파라오 중 가장 논쟁이 대상이 되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테베의 수호신 아문을 버리고, 역사상 최초로 유일신교의 신 개념을 확립한 종교 개혁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를 중부 이집트의 알-아마르나로 옮기고 신도시 아케타텐(아텐의 지평선)을 건설하였다.
신왕국시대에 누렸던 영화는 1922년 발굴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왕가의 계곡'에서 출토된 화려한 부장품들, 그중에서도 파라오 시신의 얼굴 덮개인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 등으로 확인된다. 제19왕조는 람세스 1세부터 시작한다. 그의 뒤를 이은 세티 1세는 훌륭한 군사 지도자로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 히타이트 왕국을 무력으로 압도하고, 나일 삼각주로 들어오려는 리비아 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였다. 3대 군주 람세스 2세는 66년간 이집트를 다스린 위대한 왕이었다. 평화 조약과 혼인 동맹을 맺는 등 히타이트족과의 오랜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데 성공하였다.
제20왕조의 오랜 평화시대가 가고, 왕권이 몰락하고 사제들이 정치를 농단하고, 외세의 침입을 받는 제21~25왕조가 이어진다. 제3중간기라고 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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